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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시조 이야기 6편 - 이몸이 죽고죽어(단심가)

by 플라잉블루 2021.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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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몸이 죽고죽어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지은이 : 정몽주


정몽주는 고려 말의 학자이자 문신입니다. 영천 태생으로 본관은 연일 정씨, 호는 포은 입니다.
학문, 외교, 경제, 군사, 정치, 인품 모든 면에서 특출난 고려 말기의 인물로써 왜구 토벌에도 공을 세운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습니다.
여말삼은(麗末三隱) 중의 한 사람으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목은 이색과 함께 고려말 성리학자들로 그 어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야은 길재의 후학들이 이색-정몽주-길재로 이어지는 동방 성리학의 거성들을 숭상하기 위해 여말삼은이라 칭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야은 길재 대신 도은 이숭인을 넣기도 합니다.

지금도 영천에 가면 정몽주를 추모하기 위해 조선 명종 8년에 세운 사액서원인 임고서원이 있습니다.

1. 구서원
2. 신서원
3. 포은유물관
4. 충효관
5. 조웅대
6. 용연
7. 선죽교
8. 계현재
9. 포은연수관
10. 정몽주 단심로

이 시조는 태종 이방원이 회유를 요청한 하여가를 읇자 자신의 충절을 표시한 단심가로 유명합니다.
왕조가 바뀐들 무슨 상관이냐! 얌전히 우리 손잡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새왕조를 세워 잘 나가 보자라는 뜻의 하여가로 회유하려던 이방원에게 정몽주는 단심가를 통해 '설사 죽더라도 고려를 향한 충심은 바꾸지 않는다'라고 답한 것입니다.
이에 이방원은 회유를 포기하고 부하인 조영규를 사주하여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철퇴로 때려죽입니다.
본래 선죽교의 이름은 선지교로 말 그대로 좋은땅의 다리라는 뜻이였으나, 정몽주가 살해된 사건의 무대가 되면서 다리 옆에서 참대나무 가지가 솟아 자랐다고 하여 선죽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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