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첫 소절은 쉽게 자주 들어본 문구 입니다.
이 시조는 조선시대의 문신인 김상헌이 지은 시조입니다.
김상헌은 한양 출생으로 자는 숙도, 호는 청음, 석실산인, 서간노인으로
광해군에서 인조 시기의 문신입니다.
김상헌은 한국사에서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힙니다.
1636년 중국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던 청나라와의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예조판서로 있던 김상헌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명나라와 대의 명분을 중시하며,
명나라 편을 들며 청나라와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던 강경파였습니다.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 문서를 찢어버린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후, 명나라 공격을 위한 청나라의 출병 요구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1640년 청나라의 심양으로 압송되었으며,
이 시조는 심양으로 압송되면서 지은 시조로 충의가로도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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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은 서울 북쪽의 있는 명산으로
옛 한양의 진산(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진호하는 주산으로 정하여 제사하던 산)입니다.
지금의 북한산이죠.
청나라의 수도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오랫동안 살아오던 북한산과 한강을 다시 보자는 다짐을 하며,
지금은 포로의 몸이 되어 고국의 산천을 떠나지만,
세상의 일이 어수선한 시국이니 반드시 돌아온다는 기약이 없는 떠남을 절절히 표현한 명 시조입니다.
2017년에 제작된 영화 남한산성에서 배우 김윤석이 연기한 문신이 바로 김상헌입니다.
남한산성은 김훈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을 맞이하기까지 47일간의 이야글 다룹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치욕을 참고 항복해야 한다는 주화파 최명길(이병헌 분)과
치욕을 견디고 사느니 끝까지 항전하여 죽음을 택하자는 척화파인 김상헌의 대립,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조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삼전도의 굴욕 : 삼궤구고두레, 즉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
하지만 세상은 아이러니 한 법이죠.
남한산성에 그렇게 대립하던 주화론자인 최명길도 심양에 잡혀와 있었고,
심양으로 압송된 김상헌도 포로의 신세로 심양에서 만나게 됩니다.
조선을 대표하던 두 대신이 포로의 신세로 주고받은 시는 극명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명길은
'끊는 물과 얼음 모두 물이고, 가죽 옷과 갈포 옷 모두 옷이네'
라는 시를 읊으며 시류에 흐름에 따르는 게 맞지 않냐라고 하자,
이에 김상헌은
'성패는 천운에 관계되어 있으니 의에 맞는가를 보아야 하리
아침과 저녁이 뒤바뀐다고 해도 치마와 웃옷을 거꾸로 입어서야 되겠는가
권도는 현인도 그르칠 수 있지만 정도는 많은 사람들이 어기지 못하리
이치에 밝은 선비께 말하노니 급한 때도 저울질을 신중히 하시기를'
이라며 환경이 바뀌어도 도리를 져버리면 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가슴절절히 고국을 다시 보길 그리워 하며 떠난 김상헌은
다행히 1645년 소현세자를 모시고 귀국하게 됩니다.
삼각산과 한강수를 다시 보게 된 그 소회는 이루 말할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숭명배청의 절개를 상징하는 노대신은 1652년 82세로 생을 마감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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